행복을 부르는 ‘웃음 차’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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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와 SNS에서 자주 마주치는 표현 중 하나가 ‘역대급’이다. 2025년 여름, 사상 최악의 무더위가 시작됐다. 영국 그랜섬 기후변화·환경연구소의 프레데리케 오토 박사는 이번 더위에 대해 “기념할 이정표가 아니라, 인류와 생태계에 대한 사형선고”라고 경고했다. 장마철의 극심한 습도와 폭염은 이제 냉장고와 에어컨 없이는 일상을 버티기 어려운 수준이다. 거리에선 얼음을 띄운 아이스커피를 손에 들고, 손 선풍기로 얼굴을 식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주민센터에서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무더위에 대한 경고 방송을 송출한다.
기후 재앙은 이제 단순한 날씨 이슈를 넘어 인간의 삶의 방식, 가치관까지 뒤흔들고 있다. 어린 시절, 마당에서 모깃불을 피워 놓고 옥수수를 삶아 먹으며, 부채질해 주시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가 잠들던 여름밤의 기억은 이제 추억 속 별들이 되었다.
요즘 필자는 아침마다 집 앞을 청소한 뒤, 찻물을 끓이며 하루를 연다. 깊은 산에서 길어 온 약수로 끓인 차 한 잔은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해주고, 하루를 차분하게 시작하게 해준다. 번거롭더라도 이 수고로움이 오히려 내면의 평온을 찾아주는 나만의 작은 의식이 된다. 유럽을 여행하며 놀랐던 것은, 생활 속에서 600원 정도면 누구나 쉽게 마시는 홍차 문화였다. 중국에서도 차를 삶의 일부로 여기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에 비해 우리의 일상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다반사(茶飯事)'가 아쉽기만 하다.
무더운 날, 짜증이 올라올 때 나를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차를 마시는 여유를 갖는 일이다. 조상들이 실천했던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지혜는 지금 이 시대에 되새겨야 할 소중한 삶의 방식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글로벌 커피 브랜드의 감각적인 이미지와 마케팅에 이끌려, 일상의 여유를 소비 방식으로 오해하곤 한다. 물론 현대의 커피 문화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본질’에서 멀어져 가는 우리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진정한 쉼과 성찰을 주는 차 한 잔의 여유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삶의 중심을 되찾는 소중한 행위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웃음 차 마시기’를 제안하고 싶다. 이름하여, 내 마음을 정화하는 차 명상이다.
먼저 편안한 마음과 몸으로 찻자리를 준비하고, 가볍게 목과 어깨를 스트레칭해 긴장을 푼다. 얼굴이라는 다관(茶罐)에 ‘미소 한 스푼’을 넣고, 뜨겁게 끓어오르던 감정을 천천히 식힌다. 깊은 호흡을 이어가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웃음꽃 향기와 맑은 물이 배어 나온다. 잘 우러난 미소와 웃음을 찻잔에 담아 조용히 마셔본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웃음 차의 향기와 따뜻함이 내 마음속 짐을 조금씩 녹여준다. 그렇게 웃음 차 한 잔을 마시다 보면, 뜨거운 물 속에서 천천히 피어나는 찻잎처럼, 마음도 부드럽게 풀린다.
자연이 주는 이 작은 선물 속에서 우리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다시 느끼게 된다. 지금 우리는 ‘영구적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기후 위기, 전염병, 전쟁, 사회적 불안정 등으로 가득한 시대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복도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과거 선비들이 맑은 물을 길어 정성껏 차를 달이며, 밝고 곧은 삶을 다짐했던 차 문화는 단순한 음용을 넘어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의 철학이 담긴 깊은 전통이었다.
지금 이 시대의 우리는 비록 번잡한 현실에 둘러싸여 있지만, 마음만은 차분하고 맑게 유지할 수 있다. 비싼 차가 아니더라도, 시원한 백차 한 잔에 미소를 띠며 마음을 정돈한다면,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도(道)를 닦는 수행터가 될 수 있다. 조선의 문인이자 차인 이었던 자하 신위는 “아무리 즐거운 연회라도, 좋은 차 한 잔만큼 향기롭지는 못하다. 좋은 차는 좋은 사람과 같아, 나에게 웃음을 준다”라고 말했다. 2025년의 복잡한 여름, 진심이 담긴 차 한 잔과 따뜻한 웃음으로 나 자신을 다독여보자.
웃음 명상 전문가 김영식 교수/남부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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